기후 성

기후 성
Alpsdake - 投稿者自身による著作物, CC 表示-継承 3.0, リンクによる

기후성(岐阜城)은 일본 기후현 기후시의 긴카산 정상에 위치하며, 원래 이름은 이나바야마성(稻葉山城)으로, 유구한 역사를 지닌 산성이다. 가마쿠라 시대에 이미 존재했으나, 전국시대에 이르러 사이토 도산과 오다 노부나가라는 두 전설적인 인물에 의해 일본 역사 무대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사이토 도산은 대규모 개수를 통해 성을 자신의 정치 거점으로 삼았다. 1567년, 오다 노부나가는 ‘이나바야마성 전투’에서 이곳을 점령하고 거점을 옮겨 ‘기후성’으로 개명하였다. 『신장공기(信長公記)』에 따르면, 노부나가는 본래 ‘이노쿠치(井之口)’라 불리던 지명을 ‘기후(岐阜)’로 바꾸어 ‘천하부무(天下布武)’와 일본 통일의 야망을 상징하게 하였다. 이때부터 이 성은 노부나가의 패업 실현의 출발점이 되었다.

기후성의 구조는 매우 웅장하여, 긴카산 전체가 천연 방어 거점 역할을 하였다. 산 정상의 성곽, 산기슭의 저택, 이를 연결하는 등성로가 함께 철벽의 요새를 이루었다. 현대 고고학 조사에 따르면, 노부나가 시대의 저택은 긴카산 서쪽 기슭의 쓰키다니 지역에 위치했으며, 연못과 정원, 화려한 건물들이 있어 권력의 상징과 미적 취향을 모두 구현하였다. 당시 방문한 포르투갈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도 이에 관한 기록을 남겼다.

노부나가 사후, 성주는 오다 노부타다, 오다 노부카쓰, 이케다 모토스케, 이케다 데루마사, 도요토미 히데나가 등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 전초전에서, 서군 측이었던 오다 히데노부가 지키던 기후성은 이케다 데루마사와 후쿠시마 마사노리가 이끄는 동군에 의해 함락되었고, 1601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명령으로 폐성되며 역사에서 사라졌다.

비록 원래 건물은 남아 있지 않지만, 최근 기후성의 역사적 가치는 다시 주목받고 있다. 2011년, 산 정상의 성터와 산기슭의 오다 노부나가 저택 유적을 포함한 긴카산 일대 약 209헥타르가 일본 정부에 의해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현재 정상에서 볼 수 있는 천수는 1956년에 철근 콘크리트로 재건된 모의 천수이지만, 전국시대 산성의 분위기와 장대한 경관은 여전히 느낄 수 있다.

또한 1984년부터 산기슭, 특히 기후공원 내의 노부나가 저택터에서 발굴이 계속되고 있으며, 고고학자들은 단차 지형, 건물 기단, 정원 유적 등을 발견하였다. 앞으로 정원을 복원하여, 방문객들이 당시 오다 노부나가 정권의 화려함을 더욱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기사

사진

현재 관련 사진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