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보타성(久保田城)은 아키타현 아키타시 센슈 공원 일대에 위치한 일본 성곽으로, 공식적으로는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센슈 공원(구보타성터)”로서 아키타시 지정 명승지로 지정되어 있으며, 일본 100대 명성 중 제9번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이 성은 에도 시대 구보타번의 번주 사타케 가문의 거성이며, 야도메성(矢留城) 또는 갓콘성(葛根城)이라는 다른 이름도 있습니다. 에도 후기부터 메이지 시대에 걸친 공문서에서는 종종 “아키타성”이라는 이름이 사용되었지만, 고대 무쓰국의 관청이 있던 아키타성과는 지리적으로 무관한 별개의 성입니다. 공식 명승지 명칭은 “센슈 공원(구보타성터)”이며, 역사적으로는 “구보타성”이 정식 명칭입니다.
성은 아사히가와강(雄物川의 지류) 왼쪽 강변, 예전의 구보타 지역 신메이야마(신명산, 고도 약 40m) 위에 세워졌으며, 평산성(히라야마시로) 유형에 해당합니다. 석벽은 기초 부위에 소량만 사용되고, 주로 흙 성벽(鉢巻土手, 하치마키도테)로 구성되어 있으며, 천수각은 건설되지 않았고, 그 대신 “고데쇼인(御出書院)”이라는 망루형 건물이 상징 건물로 세워졌습니다. 성 내에는 8개의 망루가 있었습니다.
석벽을 많이 사용하지 않은 이유로는 막부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라는 설과, 동국(東国) 지역에서는 원래 석벽을 잘 사용하지 않는 전통 때문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또한 사타케 가문은 히타치국 출신으로 석벽 축성 기술자들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타케 가문이 에도성 석벽 공사에 참여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성은 지형과 수계(하천, 습지)를 잘 활용해 방어력을 강화했으며, 수해자(水堀)와 원곽식(圓郭式) 구조 등 서국(西国) 스타일의 축성 기법을 도입했습니다. 간에이 10년(1633) 대화재 이전에는 3층 망루(御三階櫓)가 존재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당시의 그림이나 지도 등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확실히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1880년(메이지 13년)에 다시 큰 화재가 발생하면서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었고, 도시 재건 시에는 많은 해자들이 메워졌으며, 성하 마을은 아키타현 초기 관청가로 재편되었습니다. 현재는 혼마루(본환)와 니노마루(제2 성곽) 부지가 센슈 지구로 정비되어 센슈 공원으로 조성되었고, 산노마루(제3 성곽)에는 아키타시립 중앙도서관 메이도쿠칸, 아키타시 문화창조관, 아키타현립 순환기·뇌척수센터 등 공공 시설이 위치해 있습니다. 아키타현 지사 관저 역시 산노마루 고텐(御殿) 터에 세워졌습니다.
현재까지 원형을 유지한 건물로는, 화재와 철거, 이전을 피한 “오모노가시라 오반쇼(御物頭御番所)”가 있으며, 이는 아키타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또한 혼마루 신병기 망루(御隅櫓)는 복원되었고, 혼마루 정문(表門)도 목조로 복원되었습니다. 앞으로는 마츠시타문(松下門)과 구로몬(黑門)의 복원도 계획 중입니다. 한편, 화재에서 살아남은 후문 하나는 아사히키타 데라마치의 린쇼인(鱗勝院)으로 옮겨져, 개조 후 오늘날까지도 보존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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