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야성(名古屋城)은 아이치현 나고야시 나카구와 기타구의 경계에 위치하며, 에도 시대 초기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건축한 성이다. 이곳은 도쿠가와 고산케(御三家) 중 하나인 오와리 도쿠가와가의 거성이었으며, 오사카성·구마모토성과 함께 일본의 3대 명성(名城)으로 꼽힌다. 또한 ‘메이조(名城)’, ‘긴샤치성(金鯱城)’, ‘킨조(金城)’ 등으로도 불리며, 일본 100대 명성에 선정되고 국가 특별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 성의 기원은 16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마가와씨가 오와리 지역으로 진출하기 위해 처음 축조하였다. 1538년 오다 노부히데가 이를 점령하고 ‘나고노성(那古野城)’으로 개칭한 뒤 아들 오다 노부나가에게 맡겼다. 노부나가는 이곳에서 성장했으나, 후에 기요스성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나고노성은 점차 폐성되었다.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와리 지역을 확고히 다스리기 위해 1609년 옛 나고노성 터 인근에 새 성을 짓기로 결정하고, 아홉째 아들 도쿠가와 요시나오의 거성으로 삼았다. 이는 훗날 오와리번의 본거지가 되었다. 나고야성의 축성은 가토 기요마사, 후쿠시마 마사노리, 구로다 나가마사 등 서국 다이묘들이 석재와 토목 공사를 담당한 대규모 천하부신(天下普請)으로 진행되었으며, 오늘날에도 성벽의 돌에는 각 다이묘들의 각인이 남아 있다.
1612년 나고야성의 대천수(大天守)가 완공되었으며, 지붕 위의 황금 샤치호코(金鯱)로 유명해져 ‘긴샤치성’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나고야의 상징이 되었다. 혼마루 어전(本丸御殿)은 1615년에 완성되어 무가 쇼인 건축의 극치를 보여주었으며, 교토 니조성과 함께 대표적인 무가 저택 건축물로 꼽힌다. 이후 요시나오는 정식으로 입주하였고, 기요스의 주민·상인·사찰 등이 모두 나고야로 이주하였다. 이 대규모 이전은 ‘기요스고시(清須越し)’라 불리며, 약 5만 명이 함께 이주하여 나고야 성하마치(城下町)의 기초가 되었다.
에도 시대 후기에 들어서도 나고야성은 오와리번의 정치 중심지로 남았으나, 정치·군사적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낮아졌다. 대천수와 혼마루 어전은 주로 장군이 교토로 상경할 때의 행궁으로 사용되었으며, 도쿠가와 히데타다, 도쿠가와 이에미쓰 등 역대 쇼군들이 잠시 머무른 기록이 있다.
그러나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중 나고야 대공습으로 성의 대부분 건물이 소실되었고, 대천수와 혼마루 어전도 전소되었다. 다만 여섯 개의 구석 망루만이 남아 살아남았다. 전후에는 철근 콘크리트로 대천수를 재건하였으며, 성터 주변은 메이조 공원으로 정비되었다.
현재 나고야시는 천수각을 목조로 복원하고, 여러 성문·망루·석벽을 재정비하며, 니노마루 어전과 정원을 복원하는 종합 정비 계획을 추진 중이다. 이는 성터를 에도 시대의 원형으로 되돌리고, 역사적 문화 유산으로서 시민에게 개방하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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