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카토리성(高取城)은 나라현 다카이치군 다카토리정의 다카토리산(표고 583m, 고도차 약 350m) 정상에 위치한 산성으로, 험준한 산 정상에 세워져 다카토리야마 성(高取山城)이라고도 불린다. 일본의 삼대 산성 가운데 하나로, 오카야마의 비추 마쓰야마성, 기후의 이와무라성과 나란히, 거대한 규모와 견고함으로 유명하다. 성곽 면적은 약 6만㎡에 달하며, 둘레는 약 30km로 일본에서 가장 큰 산성 중 하나이다. 정상에는 흰 회칠을 한 천수와 29동의 망루가 즐비하여,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마치 눈 덮인 산처럼 보였다고 한다. 이 모습은 “동남쪽을 바라보면 다카토리가 눈에 덮인 듯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눈이 아니라 도사의 성이다”라는 노래로도 전해진다. (도사는 다카토리의 옛 이름).
다카토리성의 기원은 남북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남조 측의 오치 구니즈미가 1332년에 축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본래는 오치 씨의 본성인 가이후키야마성의 지성(支城)이었으나, 점차 본거지로 발전하였다. 전국시대에는 종교 세력과 잇코잇키의 충돌로 전장이 되었고, 오다 노부나가가 야마토를 장악한 뒤 한때 폐성되기도 했다. 그러나 쓰쓰이 준케이, 이어서 도요토미 히데나가의 가신 혼다 도시히사가 성을 크게 개수하였다. 특히 혼다 시대에는 대·소 천수와 17기의 3층 망루를 비롯한 다수의 다이몬·타몬야구라가 세워져, 유례없는 장대한 산성이 완성되었다. 산기슭에는 성하마을도 형성되어, 성과 성하가 일체화된 구조를 이루었다.
에도 시대에는 혼다 씨가 단절되고, 이후 우에무라 씨가 성을 이어받아 2만 5천석의 다카토리 번의 번청으로 삼았다. 우에무라 가문은 메이지 유신까지 14대에 걸쳐 다카토리를 지배하였다. 막말에는 덴추구미 사건이 일어나 성도 메이지 유신기의 격변 무대가 되었다.
1873년 메이지 정부의 폐성령에 따라 다카토리성은 해체되었고, 많은 건축물이 철거되거나 절·학교로 이축되었다. 예를 들어 니노몬은 고지마 절의 산문으로 옮겨졌으며, 마쓰노몬은 후세에 복원되었다. 목조건물은 거의 사라졌지만, 험한 산 정상에 위치한 덕분에 광대한 석축이 잘 보존되어 오늘날에도 장대한 유적을 감상할 수 있다. 1953년에는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2006년에는 일본 100명성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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