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다와라성

주소: 오다와라성
오다와라성

오다와라성(小田原城) 은 일본 가나가와현 오다와라시에 위치한 유서 깊은 평지식 성곽으로, 일본 국가 지정 사적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과거에는 "간토 지방의 난공불락의 성"으로 명성을 떨쳤으며, 통칭으로는 "고미네성(小峰城)" 또는 "고바야카와성(小早川城)"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역사적 배경

오다와라성의 기원은 헤이안 시대 말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처음에는 사가미국의 호족 고바야카와 도오히라(小早川遠平)의 거성이었습니다. 무로마치 시대에 접어든 1416년, 우에스기 젠슈의 난으로 당시의 영주 도이 씨(土肥氏)가 추방되었고, 성은 오기가야쓰 우에스기 가문의 가신 오모리 씨(大森氏)의 영지가 되었습니다.

1495년, 이즈국 출신의 호조 소운(北条早雲)이 오다와라를 공격해 성을 점령했습니다. 이로써 오다와라성은 후기 호조 씨의 본거지가 되었고, 그들의 통치 하에서 계속 확장되었습니다. 성곽의 규모는 점차 커졌고, 방어 능력도 크게 강화되었습니다. 1561년에는 나가오 카게토라(후의 우에스기 겐신) 군이 한 달간 포위했지만 성은 함락되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더욱 ‘난공불락’의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1590년, 오다와라성은 역사적인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후기 호조 씨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고, 호조 우지마사와 그의 아들 우지나오는 성을 굳게 지켰으나, 히데요시 군의 압도적인 병력과 장기 포위에 견디지 못하고 3개월 후 개성, 항복하게 됩니다. 이 전투 후 오다와라성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영지가 되었습니다.

에도 시대에는 오쿠보 타다요(大久保忠世)가 성주로 임명되었습니다. 이후 정치적 변화로 성이 잠시 폐성되었으나, 1619년에 아베 씨(阿部氏)가 성을 맡으며 복구되었고, 18세기에는 다시 오쿠보 씨가 통치하게 되어 막부 말기까지 이어졌습니다. 1871년 폐성령의 시행과 함께 오다와라성은 공식적으로 군사 시설로서의 기능을 종료했습니다.

건축적 특징과 현재 모습

현재 볼 수 있는 오다와라성의 유적 대부분은 에도 시대에 오쿠보 씨에 의해 건축 또는 수리된 것입니다. 특히 1632년(간에이 9년)의 대규모 개수로 인해 견고한 석축 기반이 세워졌으며, 이는 오늘날 유적 중 가장 상징적인 부분으로 남아 있습니다. 에도 시대 말기에는 외적에 대비하여 해안가에 세 개의 포대도 설치되었습니다.

근대에 들어 오다와라성은 공원으로 정비되어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관광 명소가 되었습니다. 천수각은 1960년에 재건되었으며, 그 꼭대기에서는 카사가케야마(笠懸山)에 위치한 이시가키야마 이치야성(石垣山一夜城) 유적을 조망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성문과 동문(銅門) 등 일부 역사적 건축물도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있습니다. 특히 간토 대지진 당시 석축 일부가 손상된 흔적이 현재도 남아 있는 것이 주목할 만합니다.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