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다오청 / 다다오청

따다오청 / 다다오청

따다오청(大稻埕)은 다오장(稻江) 또는 다오진(稻津)이라는 우아한 별칭으로도 불리며, 타이베이시 다퉁구 남서부에 위치한 유서 깊은 전통 지역입니다. 이 지명의 유래는 예전 이 지역에 넓은 벼 말리기용 공터, 즉 ‘다오청(稻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함풍 원년(1851년), 취안저우부 통안현 출신의 린란톈(林藍田)은 해적의 약탈을 피하기 위해 지룽(지금의 기륭)에서 따다오청으로 이주하여 상점을 열고 상업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로써 따다오청의 상업 발전이 시작되었습니다. 함풍 3년(1853년)에는 싼이(三邑) 사람들과 통안 사람들이 멍자(艋舺) 항구의 정박권을 둘러싸고 다툼을 벌여, ‘딩샤자오펀(頂下郊拚)’이라는 유혈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열세였던 샤자오(下郊)의 통안 사람들은 저항할 수 없어, 그들이 섬기던 샤하이청황(霞海城隍) 신상을 가지고 따다오청으로 피신했습니다. 이후 따다오청은 단수이허(淡水河) 인근의 포구를 중심으로 거래 활동이 발전하면서 점차 번창하게 되었습니다.

함풍 10년(1860년) 단수이 항구가 개항된 이후, 따다오청은 급속히 발전하여 타이베이에서 가장 번화한 물류 중심지로 자리 잡았으며, 특히 차(茶)와 직물 무역이 중심이었습니다. 외국 상사들의 진출로 따다오청의 차 수출 시장은 크게 확대되었고, 이는 지역 경제에 막대한 부를 안겨주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접어들며 일본 상인들은 외국 상사를 견제하기 위해 일본 국내 및 동남아시아 시장 개척에 힘쓰며 지역 무역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그러나 전후에는 단수이허가 점점 퇴적되면서 항구로서의 기능을 상실했고, 대만산 차는 실론 홍차와의 경쟁에서 밀리게 되어 따다오청의 경제는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타이베이 시 중심이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인구가 외부로 빠져나갔고, 따다오청은 점차 도시 외곽의 노후화된 지역으로 변모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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