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야마성(岡山城)은 오카야마현 오카야마시 기타구에 위치하며, 예전 비젠국 오노군의 중요한 성곽이었다. 외관이 검은 옻칠 판으로 덮여 있어 ‘까마귀성(烏城)’ 또는 ‘금까마귀성(金烏城)’이라는 별칭이 붙었으며, 인근 히메지성의 ‘백로성(白鷺城)’과 대조를 이룬다. 현재 성터는 일본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어, 전국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역사적 변천을 전하고 있다.
오카야마성의 기원은 전국시대에, 비젠 동부에서 일어나 미마사카와 비추 동부까지 세력을 확장한 우키타씨가 이곳을 거점으로 삼으면서 시작되었다. 성곽은 처음에 오카야마(시바오카야마), 이시야마, 덴진야마 등 몇 개의 작은 언덕 위에 세워졌다. 우키타 나오이에가 이시야마성을 개축한 뒤, 그의 아들 우키타 히데이에가 인접한 오카야마 언덕에 새로운 혼마루(본환)를 축조하고 이시야마성을 성역에 포함시켜 오카야마성의 기초를 다졌다. 이후 고바야카와씨와 이케다씨가 차례로 정비·확장하여 방어와 정치 기능을 겸비한 근세 성곽으로 발전시켰다.
오카야마성은 서쪽으로 향해 확장된 단차 구조의 구루와(곽) 배치를 가진 히라야마식(평산성)이다. 북쪽에서 동쪽으로는 자연 방어가 부족하여, 당시에는 아사히강을 개수하여 천연 해자로 활용해 방어를 강화했다. 천수는 4중 6계의 복합 망루형 구조로, 기단이 불규칙하며 아즈치성이나 오사카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에도 시대 고지도에 따르면 성곽은 5중 해자로 둘러싸였으며, 조카마치는 남북 약 3.5km, 동서 약 1.3km에 달했다.
메이지 시대에 들어 다수의 궁전, 망루, 성문이 철거되어 혼마루와 고라쿠엔만 비교적 온전히 남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천수는 공습으로 소실되었고, 전후에 철근 콘크리트로 천수와 일부 성문, 성벽이 재건되었다. 현존하는 쓰키미야구라(月見櫓)와 니시노마루 니시테야구라(西之丸西手櫓)는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혼마루 석벽과 내해자도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있다. 현재 성터는 ‘우조 공원(烏城公園)’으로 정비되었으며, 이전 니노마루와 산노마루 터에는 박물관, 방송국, 공공기관 등의 현대 건물이 들어섰다.
오카야마성 인근의 고라쿠엔은 에도 시대의 명원 중 하나로, 미토의 가이라쿠엔, 가나자와의 겐로쿠엔과 함께 ‘일본 3대 명원’으로 꼽히며, 역사·문화·자연 경관이 어우러진 중요한 관광지로 자리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