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논지성
投稿者が撮影 - ブレイズマン (talk) 03:42, 13 June 2008 (UTC), パブリック・ドメイン, リンクによる

간논지성(觀音寺城)은 일본 시가현 오미하치만시 아즈치쵸에 위치한 산성으로, 해발 432.9m의 기누가사산 위에 세워졌다. 남북조 시대부터 전국 시대에 활약한 사사키 씨(후의 롯카쿠 씨)의 거성이자 최후의 거점이었다. 현재 성터는 일본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중세 일본 성곽 연구에 있어 중요한 유적지 중 하나로 평가된다.

간논지성은 일본 중세 산성의 대표적인 예로, 험준한 지세에 자리 잡고 있다. 비와호 동쪽 연안, 도산도와 핫푸 가도가 교차하는 교통 요충지에 위치하여 수륙 교통을 감시할 수 있었으며, 전략적 가치가 매우 높았다. 주요 건축군은 산 남쪽 사면에 집중되어 있으며, 수많은 곡륜(城內 평지)이 넓게 분포하여 가신과 지방 호족의 저택이 배치되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간논지성은 중세 시기에 드물게 석축을 대규모로 사용한 성으로, 아즈치성이 등장하기 전에는 매우 이례적인 사례였다.

성 아래에는 ‘이시데라(石寺)’라 불린 성시가 형성되어 있었으며, 덴분 연간(16세기 전반)에는 ‘라쿠이치(樂市)’ 제도가 시행되어 상업 활동의 중심지로 번성하였다. 이는 롯카쿠 씨 정권의 발전과 경제적 지배력을 반영한다.

성의 구체적인 축성 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태평기》의 기록에 따르면, 겐무 2년(1335년) 북조 세력의 롯카쿠 요리이가 이미 이곳에 주둔하며 남조 명장 기타바타케 아키이에의 공격에 맞섰다고 하여, 당시 이미 기본적인 규모의 성이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간노 2년(1351년)에는 아시카가 타다요시가 남조군과 연합하여 오미에서 아시카가 다카우지 측을 격파하자, 사사키 도요와 롯카쿠 요리이가 간논지성으로 퇴각해 농성하였으며, 당시에는 ‘사사키성’으로도 불렸다.

이후 전국 시대에도 간논지성은 계속 롯카쿠 씨의 본거지로 기능하였으나, 1570년경 오다 노부나가가 오미로 진군하면서 롯카쿠 씨가 패퇴하였고, 정치적 격변 속에서 폐성되었다. 그 직후 노부나가는 인근 아즈치산에 유명한 아즈치성을 축조하여 오미의 권력 중심이 간논지에서 아즈치로 옮겨졌다.

현재 간논지성은 대부분 폐허가 되었지만, 기누가사산에 오르면 여전히 광대한 석축과 곡륜 유구를 볼 수 있으며, 비와호와 주변 평야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풍경이 장관을 이루어 역사 애호가와 등산객들에게 인기 있는 명소이다. 인근의 간논쇼지(觀音正寺) 역시 성과 이름을 공유하며, 전통적으로 성의 일부 또는 군사 거점으로 여겨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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