돗토리성
Saigen Jiro - 投稿者自身による著作物, CC0, リンクによる

돗토리성(鳥取城, Tottorijō)은 돗토리현 돗토리시의 규쇼잔(久松山) 정상에 위치한 일본의 산성(山城)으로, 전국시대부터 에도시대까지 이어져 온 성이다. 다른 이름으로는 규쇼성 또는 규쇼잔성이라 불린다. 산세를 그대로 활용한 축성 방식으로 유명하며, 현재는 천수대, 석벽, 해자, 우물 등의 유적이 남아 있으며 일본의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전국시대에서 근세 성곽으로 발전해가는 변화를 잘 보여주기 때문에 “성곽 박물관”이라 불리기도 한다.

돗토리성의 기원은 16세기 중엽으로, 당시 인바국의 슈고였던 야마나씨가 거점으로 삼았다. 이후 다케다씨, 아마고씨, 모리씨 등이 차례로 차지했으며, 1570년대에는 오다 노부나가의 명을 받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주도한 주고쿠 공략전의 초점이 되었다. 1581년, 히데요시는 돗토리성에 대해 극심한 병량봉쇄(兵糧攻め)를 실시하여 성내 장수와 주민들을 극도의 기아 상태로 몰아넣었다. 결국 성주 기카와 쓰네이에가 할복하고 개성(開城)하였는데, 이 사건은 일본 전국시대에서 유명한 기아 전술 사례로, “돗토리성 아사리 전술(鳥取城渇え殺し)”로 알려져 있다.

그 후 성은 미야베 게이준이 성주로 들어가 오다 정권의 산인 지역 지배 거점이 되었으며, 도요토미 정권 하에서도 성의 정비가 이루어졌다.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에는 이케다씨가 입봉하여 대명 규모에 걸맞은 근세 성곽으로 개수하였다. 1617년 이케다 미쓰마사가 입성한 뒤 대대적인 확장과 성하마을 정비를 진행하여, 돗토리성은 인바국의 정치 중심지가 되었다.

메이지 유신 후, 폐성령(廃城令)이 내려지면서 1870년대에 대부분의 건물이 철거되었고, 일부 석벽과 나카시키리몬(中仕切門)만 남았다. 나카시키리몬은 1975년에 붕괴되었으나 곧 목조로 복원되었다. 현재 돗토리성 유적은 시민과 관광객의 휴식 공간이자 교육·문화적 가치가 있는 장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993년에는 농성전에서 끝까지 버틴 기카와 쓰네에를 기리는 동상이 세워졌으며, 2006년에는 “일본 100명성(日本100名城)”에 선정되었다.

최근 돗토리시는 장기적인 보존·복원 계획을 추진하여, 30년에 걸쳐 성곽 원형을 점차 되살릴 예정이다. 현재 오테몬(大手門)이 이미 복원되어 일반 공개 중이며, 앞으로는 목조로 삼층 망루(御三階櫓)와 기타 시설들도 복원할 계획이다.

기사

사진

현재 관련 사진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