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후성(甲府城), 또는 마이즈루성(舞鶴城)은 야마나시현 고후시에 위치한 히라야마식(平山城, 언덕 위의 평지성)의 일본 성으로, 현재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고후 시내 중심부의 중요한 역사적 랜드마크입니다. 무로마치~전국시대의 다케다 가문의 쓰쓰지가사키 저택과 함께, 고후의 역사 중심을 이루는 유적입니다.
성의 배경과 역사적 전개
고후성은 고후 분지 북부의 작은 구릉에 건설되었으며, 예로부터 전략적·정치적 요충지로 여겨졌습니다. 다케다 가문이 가이국을 다스릴 당시에는 쓰쓰지가사키 저택을 중심으로 고후가 성하 마을(城下町)로 발전해 정치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다케다 가문의 멸망 이후, 도쿠가와 및 도요토미계 다이묘들이 이 지역을 다스리며 이곳에 새로운 성곽인 고후성을 축조하고, 성하 마을을 재정비하여 더 큰 규모의 정치·군사적 거점으로 발전시켰습니다.
도요토미 정권 시기에는 고후성이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견제하는 전략 거점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고, 에도 시대에 들어서는 도쿠가와 가문의 신번(親藩) 영지로 지정되어, 쇼군 가문과 가장 가까운 요지 중 하나로 간주되었습니다. 성 내에 천수대(天守台)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실제로 천수각(天守)이 지어졌는지는 여전히 명확하지 않습니다.
에도 시대에는 막부 직할령이나 고후 근번(勤番) 체제 하에서 지역 행정과 군사 중심지로서 오랜 기간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메이지 시대 이후의 변화와 현황
1873년, 메이지 정부는 폐성령(廃城令)을 발령하여 고후성을 폐성으로 지정하고 대부분의 성 건축물을 철거하였으며, 내해자도 매립되어 공공기관이나 행정 용지로 전용되었습니다.
그 후, JR 주오 본선 개통과 함께 고후역이 옛 성의 시미즈쿠루와마루 자리 위에 건설되며 성터는 분할되었습니다. 하지만 전후에는 발굴과 보존 활동이 진행되어 역사적 경관이 서서히 복원되고 있습니다. 현재는 혼마루(本丸), 천수쿠루와(天守曲輪), 천수대(天守台), 이나리쿠루와(稲荷曲輪), 가지쿠루와(鍛冶曲輪)의 석벽 및 일부 해자가 보존되어 공원 및 관광지로 일반에 개방되어 있습니다.
출토 유물 중에서는 금박 샤치호코瓦와 장식기와가 특히 주목할 만하며, 야마나시현 지정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기사
사진
현재 관련 사진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