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가성(옛 이름 “사가성(佐嘉城)”)은 오늘날 사가시 중심부에 위치하며, 에도 시대 초기에 사가번 번주 나베시마 씨가 건축한 거성입니다. 그 전신은 전국시대 류조지 씨가 축성한 “촌중성(村中城)”으로, 게이초 연간에 대규모 확장과 개수를 거쳐 오늘날 알려진 사가성이 되었습니다.
웅대한 석축을 자랑하는 많은 명성과 달리, 사가성의 특징은 토루(土塁)를 주체로 하고, 외곽에는 폭 50미터가 넘는 해자가 파여 있었다는 점입니다. 성 내부가 보이지 않도록 토루 위에는 소나무와 녹나무가 심어져 성 전체가 숲 속에 잠겨 있는 듯 보였기 때문에 “가라앉은 성(沈み城)”이라는 별칭도 있었습니다. 더욱 특별한 것은 수리(水利)를 이용한 방어 설계로, 적군의 공격 시에는 다부세가와에서 물을 끌어들여 본환 이외의 구역을 모두 침수시켜 천연의 장벽으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게이초 어적회도(慶長御積絵図)」와 후대의 성하 그림을 비교하면, 실제로 완성된 사가성의 모습은 초기 설계도와 차이가 있었으며, 망루 수가 줄고 본환·니노마루 석축 규모도 단순화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학자들은 사가성을 “미완성의 성”으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에도 시대, 사가성 아래 마을은 나가사키 가도가 지나繁榮하여 고쿠라와 나가사키를 잇는 중요한 역참이 되었습니다. 성내외를 가로지른 수로는 방어와 생활 기능을 겸하여, 성을 지키는 동시에 시민의 일상적인 용수원이 되었습니다.
메이지 시대에 들어와 “사가의 난”으로 인해 성은 크게 파괴되어 본환 어전과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 사라지고, “샤치의 문”과 인접한 망루만이 현존하며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천수는 이미 교호 연간에 화재로 소실되었으며, 최근 연구에서는 그 규모가 고쿠라성과 비슷하거나 더 컸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오늘날 사가성 터는 “사가성 공원”으로 정비되었습니다. 본환 어전은 2000년대에 목조로 복원되어 “사가성 본환 역사관”으로 공개되고 있으며, 시민과 관광객이 번정사와 지역 문화를 배우는 중요한 거점이 되고 있습니다. 성터 주변에는 복원된 토루와 동쪽 해자가 남아 옛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으며, 니노마루 일대에는 현청, 미술관, 박물관, 학교가 들어서 사가현의 정치·경제·문화 중심지로서 지금도 핵심적인 역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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